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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관 보존 기술 소개 (습도, 문서, 케어)

by the-money1 2025. 8. 5.

수백 년 전의 기록이 아직도 생생하게 존재하는 고서관은 단순한 책 보관소가 아닙니다. 이 공간들이 지금까지 귀중한 지식과 자료를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철저한 ‘보존 기술’ 덕분입니다. 이 글에서는 고서관에서 활용되는 대표적인 보존 기술들을 습도 관리, 문서 처리, 물리적 케어 측면에서 자세히 살펴봅니다.

습도와 온도, 보존의 기본을 지키는 기술

고서의 가장 큰 적은 시간 그 자체보다도, 환경입니다. 특히 습도와 온도는 책의 수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고서관에서는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집니다. 일반적으로 고문서를 보관하기 적절한 온도는 18~20도, 상대습도는 45~55%가 권장되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 고서관은 항온·항습 장치를 도입합니다.

습도가 높으면 종이와 표지가 곰팡이에 노출되기 쉽고, 잉크 번짐이나 접착제 손상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 낮은 습도는 종이를 건조하게 만들어 부서지기 쉽게 만듭니다. 따라서 현대의 고서관은 자동 센서 시스템과 연동된 공조 설비를 설치해, 미세한 환경 변화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특히 유럽의 주요 고서관, 예를 들어 영국의 보들리안 도서관이나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지하 저장소나 암석층 위에 공간을 마련해 자연의 온습도 균형을 활용하는 방식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산화탄소 농도까지 조절해 곰팡이 성장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기술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주기적으로 데이터 로거를 이용해 온·습도를 기록하고 분석하여, 계절 변화에 따른 최적의 보존 전략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한 절차입니다. 이런 관리 없이는 수백 년 전 기록물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문서 자체의 보존, 복원과 디지털화의 조화

고문서 보존의 핵심은 바로 원본의 물리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고서적은 산성과 잉크 부식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종이의 변색, 갈라짐, 부식 등으로 이어집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첫 번째 기술은 ‘중성화 처리’입니다. 산성 종이를 중성 혹은 알칼리성으로 바꾸어 산화 속도를 늦추는 방식입니다.

또한, 과거 수작업으로 제본된 책의 특성상 접착제와 실이 약해지면 장서가 분리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물리적 복원이 수반됩니다. 손상된 종이는 일본산 얇은 화지나 무산성 재료를 이용해 수선하며, 각 장을 손으로 넘길 수 있도록 특별한 접합 방식을 적용합니다. 이 모든 작업은 전문 보존 복원사의 숙련된 손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한편, 고서의 미래를 위한 기술로 ‘디지털 아카이빙’이 빠질 수 없습니다. 이는 원본을 스캔해 고화질 디지털 이미지로 저장하는 과정으로, 열람과 활용은 자유롭게 하되 원본의 훼손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라이브러리 오브 콩그레스는 수십 년 전부터 이 시스템을 운영 중이며, 한국의 규장각도 상당수의 고문서를 디지털화하여 대중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디지털화는 단순히 정보를 보존하는 것을 넘어, 검색 가능성과 글로벌 연구 접근성 확대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 고서관은 이러한 기술을 통해 지식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유산을 접할 수 있도록 그 문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도서관의 책들

세심한 물리적 케어, 보존의 마지막 관문

기계와 기술만으로는 고서를 완벽히 보호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손길과 주의 깊은 관리가 결합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보존이 이루어집니다. 실제로 고서관에서는 장서를 손으로 다루기 전 면장갑을 착용하고, 책장이 자동으로 열리지 않도록 서가의 경첩 구조를 조정하는 등 세세한 배려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책을 보관할 때도 일반 서가와는 다릅니다. 책등이 태양빛을 직접 받지 않도록 뒤집어 보관하거나, 유리문이 있는 방충 처리된 수납장을 이용해 먼지와 해충의 접근을 막습니다. 고서가 자주 이용되는 열람실에는 자외선 차단 조명이 설치되며, 열람용 복제본을 비치해 원본의 불필요한 노출을 줄입니다.

특히 고서관에서는 ‘책 돌리기’라는 독특한 보존 절차도 진행됩니다. 이는 오랫동안 같은 위치에 있던 책들이 한쪽 면만 손상되거나 변색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위치를 바꿔주는 작업입니다. 또한 특정한 종이나 표지 재질은 개별 포장해 습기나 벌레에 대한 대응력을 높입니다.

문서뿐 아니라 책장을 구성하는 나무, 천, 가죽 표지도 보존 대상입니다. 탈색된 가죽은 전용 보습제로 코팅하고, 수축된 천 표지는 미세 습도 조절로 복원하는 세밀한 작업이 병행됩니다. 이런 물리적 케어는 단순한 관리 차원을 넘어, 문화재를 다루는 장인의 손길과 같은 정성을 담고 있습니다.

고서관의 보존은 단순한 기술의 축적이 아니라, 지식과 시간에 대한 존중의 표현입니다. 습도 조절, 문서 복원, 정밀한 물리적 관리까지—모든 과정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 있습니다. 바로 인류의 지혜를 다음 세대까지 온전히 전달하는 것. 우리가 이 공간을 방문하는 순간, 단지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교차점에 서 있는 것입니다.